등록 : 2015.01.09 20:09수정 : 2015.01.10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1998년 미국에 온 천해영씨는 카지노를 왕복하는 ‘버스꾼’이 되었다. 샌즈 카지노로 향하는 버스 창밖에 비친 천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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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뉴욕 버스꾼 천해영
▶ 카지노를 오가며 끝없는 버스여행을 한다. 집 없는 불법체류자 한국인이 많다. 2013년부터 양영웅(31) 기자는 직접 허름한 옷을 입고 버스를 타면서 ‘버스꾼’ 취재를 하고 있다. 뉴욕국제사진센터 포토저널리즘·다큐멘터리 과정을 졸업한 그는 <뉴욕 타임스>에 사진을 기고하고 통역·현장취재를 맡는 등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버스꾼’ 작업은 매그넘 재단의 후원을 받았다.
“집이 없어도 카지노에서 먹고사는 건 문제없습니다.”
자정 무렵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있는 샌즈 카지노. 노숙자들이 카지노 버스를 타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시아 사람들이 가득 메운 이곳의 풍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차이나타운에서 사온 값싼 볶음밥을 슬롯머신과 비디오게임 기계 앞에서 먹고 있거나 자고 있는 사람들. 주머니 두둑한 백인 갬블러(도박꾼)가 전자식 룰렛머신에서 높은 베팅액을 걸면 그 주변으로 몰리기도 한다. 뱅커(banker)와 플레이어(player) 중 한쪽을 택해 9 이하의 높은 점수로 승부를 거는 카드 게임인 바카라 테이블에서는 ‘뒷전’ 하는 몇몇 중년 한인들도 북적거린다. 선수들 뒤에서 응원하고 이기면 팁을 받아 간다. 밴드 연주와 섹시한 춤사위를 벌이는 댄서들이 파티 분위기를 내는 바는 무료한 중장년 아시아인들을 무대 출구에 맴돌게 한다.
족제비, 로또박, 미스터 리, 땅콩할매…
새벽 1시. 푸드코트 매니저가 삼삼오오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을 내쫓는다. 몇몇은 벽에 꽂은 휴대용 디브이디(DVD)플레이어 전원을 빼기 시작하고, 어떤 이는 식당에서 구입한 음료수를 내보이며 눈을 치켜뜬다. 나머지는 순순히 일어나 슬롯머신 의자에 앉아 졸거나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카지노 바깥의 버스센터 대합실에 가서 잠을 청한다. 새벽 3시30분 뉴욕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2013년 1월23일 처음 만난 중국 선양 출신 한인 천해영(58)씨도 샌즈를 비롯해 미국 동부지역 카지노에서 먹고산 지 15년째였다.
“차(버스) 뛰는 사람들입니다. 카지노로 오는 왕복버스를 타면서 돈 버는 사람들이란 뜻이죠. ‘버스꾼’이라 부릅니다.”
샌즈 카지노는 뉴욕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러키나인 엔터프라이즈’, ‘골든메가엔터프라이즈’ 등 중국계 버스회사에 계약을 맺고, 뉴욕의 차이나타운과 아시안 밀집지역인 플러싱, 브루클린 선셋파크 등 세곳에 30분에 1대씩 왕복 버스노선을 운행한다. 플러싱에선 샌즈 외 3개 카지노 노선이 하루 50여대 출발한다. 2시간 걸려 카지노 버스센터에 도착하면 카지노 직원이 하차하는 모든 고객에게 45달러 상당의 슬롯머신 게임 머니가 든 쿠폰을 각각 준다. 이들은 카지노 입구에서 쿠폰을 원하는 갬블러들에게 현금 38~40달러에 판다. 버스값 15달러를 빼면 25달러를 ‘공짜로’ 벌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탄다. 이런 생계형 무직자가 ‘버스꾼’이다.
천해영씨는 1998년 연변에서 밀입국한 뒤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다가 2000년 4월9일 다리를 다쳤다.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뉴욕 플러싱에서 출발하는 카지노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남부 뉴저지에 있는 애틀랜틱시티의 다수의 카지노들, 코네티컷 ‘폭스우드’와 ‘모히건 선’(Mohegan Sun)으로 가는 카지노 버스들을 타다가 2009년 샌즈 카지노가 생기자 목적지를 바꾸었다. 쿠폰 카드의 금액이 크고 수익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곳과는 달리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아 서류 미비자들이 이용하는 데 제약이 없다.
천씨의 하루 일과는 수년 동안 변함이 없다. 저녁 8시30분께 플러싱에서 버스를 탑승한다. 카지노에서 받은 쿠폰을 중국인 갬블러에게 팔고, 5시간 동안 카지노와 버스센터 대합실에서 지낸다. 새벽 3시30분 뉴욕으로 돌아가는 같은 버스에 타고 플러싱에서 하차하면 피시방, 사우나, 노숙자 임시보호소, 여관 등으로 가서 잠을 잔다. 3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오전 10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저녁 7시30분에 돌아오면 한 시간 뒤 밤 버스를 타기 위해 제과점에서 허기를 채운다.
천씨는 15년 동안 버스꾼 생활을 하면서 1000명 정도를 알아본다고 했다. 그는 “80~90%는 다 버스꾼으로 보면 된다. 10%만 갬블만 하러 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할 줄 알아도 카지노 안에서는 주로 구경만 합니다. 하면 모은 돈 잃습니다. 게임을 안 하면 모은 돈이 그대로 남으니 그냥 참고 돌아다니거나 자는 거죠. 돈(게임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있으면 죽고, 돈 없으면 (쿠폰 받는 것만으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
이현광씨의 장례식을 치른 2013년 5월21일. 10년 넘도록 카지노 버스를 함께 탄 천씨를 비롯해 몇몇의 버스꾼들만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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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씨에 따르면 버스 탑승 인원 60여명의 40%는 카지노에 출입을 아예 안 하고 300석의 의자가 구비된 대합실로 직행해 뉴욕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새우잠을 청한다. 몇몇은 지참해 온 디브이디플레이어를 틀거나 장기를 둔다.
버스꾼들은 서로 본명을 모른다. ‘쪽제비’ ‘로또박’ ‘배돌이’ ‘미스터 리’ ‘절름뱅이’ ‘땅콩할매’ 등 별명으로 부른다. 천씨도 마찬가지다. “카지노에서는 친구가 없어야 한다. 친해지면 돈 빌려달라고 한다. 돈을 꿔주면 ‘웬수’ 된다. 어차피 못 갚는다”고 그가 말했다. 다만 같은 버스를 탄 이들의 좌석번호는 확실히 기억한다. 그만큼 주로 고정 멤버들이 버스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다. 새벽녘 뉴욕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음날 표를 판다. 공기가 비교적 쾌적한 앞자리를 예약하기 위해선 버스 차장에게 팁 5달러를 준다. 남는 자리는 극소수다. 플러싱에서 탑승시각 한 시간 전에는 중국인 제과점에서 남는 표를 구하려는 극빈층의 아시아인들이 줄을 서서 버스 차장을 만나려고 한다. ‘돈 벌 수 있는 버스 여정’인 만큼 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베들레헴은 미국의 대표적 철강도시였으나, 점차 쇠퇴해 2009년 공장 자리에 샌즈 카지노가 들어섰다. 건물 몇 채가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 카지노 주차장에 인접한 철강공장 방향으로 버스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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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바닥처럼 웅성웅성하게 만들려는 전략
워싱턴디시에서 카지노의 착취행위를 고발하는 비영리단체 ‘약탈적 도박을 중단하라’(Stop Predatory Gambling)의 대표 레스 버널은 카지노 버스들이 “관광버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카지노 업체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거나 버스회사와 계약을 맺고, 사회에서 가장 취약계층을 게임장으로 끌어들인다”며 “특히 아시안을 타깃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카지노들이 갬블링에 비교적 우호적인 문화를 지닌 아시아인 고객을 타깃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고, 버스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 보스턴의 차이나타운에서는 하루 50대의 버스가 코네티컷의 폭스우드와 모히건 선 카지노로 향하고, 서부지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도 하루 80대의 카지노 버스가 운행한다. 이 때문에 아시아인 고객이 주를 이루는 카지노들이 많다. 샌즈 카지노의 194개 테이블에서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 고객이고, 동부지역 최대 규모인 폭스우드는 하루 평균 1만3000명이 아시아인으로 추산된다. 샌디에이고 페창가(Pechanga) 카지노는 아시아인이 50%가 넘는다.
펜실베이니아주 게임조정위원회(Gaming Control Board) 대변인 리처드 맥가비는 카지노에서 지급한 쿠폰카드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거래는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쿠폰카드 분배는 카지노가 버스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진행하는 자체적인 홍보수단”이고, “고객들이 그 카드를 갖고 뭘 하든 그들의 소관일 뿐”이라고 말했다.
카지노 업체는 버스꾼들의 쿠폰 밀거래에 대해 알고 있을까? 천씨의 말대로 게임도 안 하는 버스꾼들이 가득하다면 카지노 업체는 손해를 보는 걸까?
천씨와 카지노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따금 안부를 묻고 카지노로 사라지는 손정호씨. 그는 “카지노에 큰손들이 오게 하도록 시장바닥처럼 웅성웅성하게 만들기 위해 버스꾼들이라도 많이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스꾼은 “들러리, 혹은 엑스트라”라고 푸념했다.
2013년 1월25일. 버스꾼들이 뉴욕의 플러싱 공영주차장 앞에서 샌즈 카지노 버스를 탄다. 겨울철에는 다수의 한인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버스를 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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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차이나타운의 복지시설 ‘해밀턴 매디슨 하우스’의 중국계 상담가 피트 이는 카지노 업체의 비즈니스 전략일 뿐이라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카지노에서 돈 쓰는 갬블러들은 냄새나는 버스 대신 자가용 타고 오는데 왜 지속적으로 버스 탑승객들에게 바우처를 공짜로 나눠줄까요? (의도대로)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버스꾼들은 결국 도박에 빠지게 됩니다. 이건 다 계획된 시스템이죠.”
피트 이는 뉴욕에서 다른 주의 카지노로 가는 버스는 주중에 총 3000석, 주말에는 7000석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박은 아시아 고유의 문화이기 때문에 레저로 생각하고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고, 일정한 주거지가 없어서 버스와 카지노를 쉼터로 삼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카지노는 버스꾼들을 심각한 도박중독에 노출시킨다는 의견이다. 대부분의 카지노에는 아시아인들을 겨냥한 테마게임장과 슬롯머신, 중국식당 등이 구비돼 있고, 음력설 연휴에는 아시아인 가수 초청공연 등 특별행사가 줄줄이 마련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샌즈 카지노와 폭스우드의 직원 중 아시아인이 20%를 넘는다. 샌즈의 경우 4년 동안 두 배 급증했다.
샌즈 카지노 버스를 하루에 두번 타면 버스와 카지노에서 머무는 시간이 15시간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카지노에서 머물다 보면 게임으로 돈을 땄다는 사람 한명은 꼭 나타난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기 마련이다. 버스꾼들에게 ‘한 방’이라는 희망 아닌 희망을 심어주게 된다. 버스꾼들에게 하루의 시간이란 40~50달러로 읽힌다. 며칠 동안 버스를 타서 돈이 모이면, 베팅 한번에 하루에 번 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바카라 테이블에 앉는다. ‘생계’를 위해 수십 시간 밤낮으로 버스를 타는 고통을 감내한 몸이 확률의 테이블에 내던져지는 순간이다. 천해영씨도 모은 돈으로 꾸준히 바카라 게임을 시도한다.
“버스꾼들은 300~400달러 모으면 갬블해요. 아예 안 하는 사람 10%를 제외하면 다 하게 됩니다. 그런데 돈도 못 따고 다 날아가요. 죽으면 또 차 뛰고(버스 타고) 또 돈 모으고. (다른) 일도 못 합니다, 습관돼 갖고.”
어떤 이들은 자금을 빨리 모으고 싶은 욕심에 슬롯머신과 비디오게임을 하기도 한다. 주로 천씨와 “돈 얼마 땄느냐”는 인사말만 나누는 ‘미스터 리’ 이아무개(47)씨도 테이블 게임을 하기 위해 비디오 포커 게임을 한다. 2013년 3월6일 기자에게 “기계로 돈을 따서 모은 뒤 테이블로 올라가겠다”고 장담하며 과거에 잃었던 수십만달러를 되찾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2년 가까이 지난 현재 여전히 버스를 두번 타며 모은 돈으로 비디오 포커 게임을 하고 있다. 그는 “버스 탈 땐 절대 노름 안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슬롯머신만 보면 하게 된다”며 “20달러로 180달러 번 기억이 늘 나를 지배하기 때문에 최후의 1달러까지 베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꾼 생활을 한 지 8년 된 ‘배돌이’, 중년 한인 남성도 평소엔 비디오 포커에 주력하지만 늘 손에 바카라 패턴분석표를 가지고 다닌다. 그는 “버스 두번 타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잘 안 모이고 계속 잃는다”며 “카지노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뉴욕과 샌즈 카지노간 왕복버스
카지노서 주는 45달러 쿠폰을
갬블러들에게 팔아 먹고사는
버스꾼들이 승객의 40%다
천해영씨도 그중 한 명이다
빈곤층 아시안 타깃 삼은 카지노
버스꾼에서 노름꾼 전락한 그
밤낮없이 커피와 술, 그리고 쪽잠
앞니 빠지고, 쓰러져 쓸개 절제수술
버스 안에서 죽은 친구들도 많아
일부 한인들은 왜 중국인들을 부러워하나
2년 가까이 천씨를 지켜봤는데, 그는 그래도 다른 한인들에 비해 게임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었다. “반드시 계획 있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지장을 안 주고 내 힘만으로 먹고산다. 그래야 사람답게,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계획이란 매달 1일에서 15일까지 쿠폰 판매로 모은 현금 300달러로 테이블 게임을 하고, 16일부터 말일까지 모은 돈은 집세를 낸다. 매일 자금이 생길 때마다 노름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씨도 과거 누렸던 ‘한탕’의 늪에 빠져 사는 건 마찬가지다. 그는 15년 전 실직하고 지인을 따라 코네티컷에 있는 폭스우드를 간 것이 화근이다. 카지노 쿠폰을 되팔아 10달러 남는다는 시스템을 발견한 뒤 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여섯달 만에 바카라 게임에 빠지게 됐다. 그러다 20만달러를 번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천씨는 “난 자금을 투자받고 게임하는 노름꾼이었다. 그땐 내가 지금 버스꾼이 될 줄은 몰랐다. 생활은 버스꾼이지만 여전히 난 노름꾼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2013년 8월21일. 천해영씨가 플러싱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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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에서 자금이 있는 사람에게 투자를 받아 게임에서 크게 이기면 수익의 30%를 받는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8월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바카라 테이블에서 도박을 했다가 3000달러를 갚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바 있다. 최근에는 투자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샌즈 카지노 버스를 타며 모은 돈으로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카지노에서 노름을 하지만, 일정 금액 이상 게임에서 이기면 직원이 신분증 지참 여부를 트집 잡아 제지했다는 게 천씨의 생각이다. 카지노 업체는 재량에 따라 고객에게 신분증을 요구할 수 있고 범죄혐의가 없더라도 퇴장시킬 수 있다. 천씨는 다시 샌즈 카지노행 버스를 타며 시간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시간이 없다. 육체적으로 되돌릴 수 없다. 그건 보상이 없다. 어떤 때는 돈을 많이 따서 모아도 언제 잃을지 모른다. 그냥 그런 재미로 사는 거다.”
그러나 천씨는 계속된 카지노 생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다. 앞니가 대부분 빠졌고, 2009년에는 카지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뒤 쓸개 절제수술을 받기도 했다. 밤낮없이 커피와 술을 마시고, 많아야 두세 시간 쪽잠을 잔 탓이다. 그는 “버스를 타면 다리가 부어서 힘들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 같아 가끔 버스를 안 타고 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픈 다리에 그나마 있던 근육들도 앙상하게 줄어들어 걸음폭이 10㎝가 넘지 않는다. 버스 생활을 하며 죽은 친구들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버스를 타다 보면 가끔씩 한두명 사라집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아는 사람 4명이 죽었습니다. 이발관을 하다가 집 없이 카지노 버스 타게 된 ‘까까’는 당뇨로 인해 실명된 뒤 죽었고, 나보다 두 살 어린 엘에이 송은 심장마비로 버스 안에서 숨졌어요. ‘구르마 한’도….”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카지노 버스를 함께 타던 이현광씨는 당뇨와 버스 생활로 인해 다리를 절단하고, 2013년 5월에 64살의 나이로 숨졌다. 플러싱 재미장의사에서 마련한 장례식에는 함께 버스를 탄 20여명과 이씨의 입원 치료를 도운 노숙자보호소 ‘사랑의 집’ 관계자들만 참석했다. 뉴저지에 있는 두 아들과 부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버스꾼들은 같은 일정을 공유하지만, 중국인과 한인의 생활상은 다르다. 천씨를 비롯한 일부 한인들은 대부분의 중국인 버스꾼들이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영주권과 같은 합법적인 신분이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천씨는 “중국인들은 영주권을 대체로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최하 생계유지비, 푸드스탬프로 생활하고,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며 “한인 서류미비자들은 수입원이 한가지다. 카지노 쿠폰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몸이 불편해지면 그룹홈 형태의 임시보호소나 쉼터로 운영되는 곳을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플러싱 지역에서 이러한 곳이 5~6군데가 있다. 뉴욕시 정부의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곳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목회자들이 노숙인 사역을 위해 마련한 곳이다. 천씨와 같이 건강이 좋지 않은 한인 버스꾼들이 찾는다. 이들을 위한 숙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취업 알선, 각종 중독치료를 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장기적 관리가 힘든 실정이다. 노숙인들 중 당뇨병, 심장질환 등 건강이 좋지 않은 한인들은 노숙인보호소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할 수는 있지만, 장기입원이 불가능해 시정부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로 보낸다.
“죽을 때까지 안 끝나…죽으면 끝나는 거야”
1990년대 중반부터 마약·폭력 전과가 있고 수년 동안 버스꾼 생활을 한 바 있는 윤아무개(54)씨는 “시정부가 운영하는 맨해튼 지역 보호소에 가도 영어가 불편하고 같은 처지의 미국인 노숙인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결국 온정의 손길이 그리워서 낯선 영어권 보호소에 가는 대신 한인 커뮤니티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기자가 만난 플러싱의 많은 버스꾼들은 공통적으로 가족이 해체돼 있었고 정착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뉴욕 주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비영리기관인 뉴욕한인봉사센터의 김광석 회장은 “일반적으로 한인 노숙인들에게 직업훈련과 의료혜택 등 정부 지원을 받도록 돕고 있지만, 서류미비자인 이들은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보내는 방법이 최선”이라며 “사실 국가 차원의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들을 실질적으로 돌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류미비자란 미국 정부 이민국이 ‘불법이민자’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며, 밀입국을 했거나 합법적 체류기간을 초과하거나 영주권, 시민권과 같은 서류가 없는 이들을 지칭한다.
천해영씨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1998년 미국에 와, 5년 동안 돈을 벌고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천씨는 술회했다. 그에게 아메리칸드림은 카지노의 바카라 테이블 게임에서 높은 베팅액을 취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사는 것은 계획 있게 사는데,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몰라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거야. 죽으면 끝나는 거야. 가족? 괜히 생활에 지장을 주기 싫어요. 그래도 가족이 있는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습니다. 미국에는 자유가 있잖아요.”
뉴욕·베들레헴(펜실베이니아)/양영웅 프리랜서 기자
웹사이트 yeongungyang.com